최승은 작가가 건네는 행복한 나이 듦의 처방전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이 흘렀다.
슬픈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와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이 너무 씩씩했고, 그 씩씩함 속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고단함이 내 마음 속에 다가와 속삭였기 때문이다.
최승은 작가의 삶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내 삶도 함께 떠오른다.
누구나 살아오며 각자의 고비를 넘는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한 상처와 버텨낸 시간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간을 조용히 꺼내어 보여준다.
고통을 극적으로 포장하지도 않고, 성공담처럼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로 삶을 기록한다.
책의 제목처럼 작가의 삶은 익어가는 중이다.
익어간다는 말에는 빠른 성공이나 화려한 성취보다 더 깊은 시간이 담겨 있다.
뜨거운 햇살도 지나야 하고, 비바람도 견뎌야 한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무너질 것 같아도 결국 자기만의 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의 농도와 색채를 담고 있는 이야기다.
최승은 작가는 요양병원 수간호사이다.
가난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간호조무사의 길에서 간호사의 길로, 다시 겸임교수와 사업가, 작가, 오카리나 연주자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왔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자신을 밀고 나아가는 사람일까.
한 가지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삶이 주는 기회를 붙잡아 계속 배우고 도전해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승은 작가를 보며 들장미 소녀 캔디가 떠올랐다.
외로워도 슬퍼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울고 난 뒤에도 다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
작가의 삶에는 그런 씩씩함이 있다.
세상이 정해준 속도나 모양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기 안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걸어온 사람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간호사가 천직이 될 줄 몰랐다
2장 인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기쁨
3장 요양병원 간호사로 만족하냐고 물었다
4장 간호사 그 너머의 삶을 꿈꾸며
5장 요양병원에서 내 삶도 익어가는 중이다

이 구성만 보아도 책이 단순한 직업 에세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호사의 삶을 말하지만, 결국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받아들이고 성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은 삶과 죽음, 돌봄과 이별, 고단함과 보람이 함께 머무는 자리다.
그곳에서 작가는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고, 동시에 자신의 삶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요양병원은 흔히 늙음과 병듦의 공간으로만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그곳을 다르게 보게 한다.
요양병원에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 오늘 하루를 존엄하게 살아내려는 환자들의 표정, 작은 회복에 기뻐하는 가족들의 숨결이 있다.
작가는 그 현장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돌봄이란 무엇인지, 행복한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를 오래 바라본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 고난이 많았다고 말한다. 희로애락 중에서도 노와 애가 많았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사람은 기쁨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아픔을 통과하며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막막한 시간을 견디며 누군가의 막막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에는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온도가 있다.
작가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배움을 삶으로 가져왔다.
지식은 책상 위에만 있을 때 온전한 힘을 갖지 못한다.
현장에서 부딪히고, 몸으로 겪고, 사람을 만나며 확인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앎이 된다.
최승은 작가의 삶이 그 증거처럼 보였다.
간호 현장에서의 경험, 사람을 돌본 시간, 자신의 삶을 붙들고 일으켜 세운 과정이 모두 이 책 안에서 하나의 배움으로 익어간다.
스물세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쉽지 않은 삶의 조건 속에서도 작가는 멈추지 않았다.
간호, 교육, 상담, 안전교육, 컴퓨터 강사, 음악 활동까지 그의 삶은 계속 확장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다르게 보였다.
그것은 삶을 향한 애착이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여러 방향으로 자신을 키워갈 수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작가가 자신을 가엾게만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말하지만 상처에 갇히지 않는다.
고생을 말하지만 고생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지나며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 순간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 삶도 익어가는 중>이라는 제목은 결국 독자에게도 건네는 말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 삶이 완성되지 않았어도 괜찮다.
남들보다 늦어 보여도 괜찮다.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도, 실패한 것 같아도, 그 시간 안에서 무언가 익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삶을 원망만 하지 않고, 다시 배우고, 다시 움직이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최승은 작가의 책은 행복한 나이 듦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아무 걱정 없는 노년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삶을 끝까지 책임지고,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며, 누군가를 돌보고, 또 자신도 돌보는 삶에 가깝다.
행복한 나이 듦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매일의 태도가 쌓여 만들어지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작가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고, 동시에 내 삶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도 익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다.
완벽하지 않아도, 늦어도, 흔들려도,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향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요양병원 간호사의 이야기이면서, 한 여성의 성장기이고, 삶의 후반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조용한 응원이다.
나이 듦이 두렵거나, 지금의 삶이 버겁거나,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면 좋겠다.
누군가의 진솔한 삶이 때로는 그 어떤 조언보다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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